IV. 본문 살피기

1. 거시적 구조

  마가복음은 수사의문이나 실제의 물음 등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대답 없이 그냥 지나간다(1:27; 2:7; 4:41; 14:4; 16:3). 약 114개의 질문이 있다. 그 중 77개가 무응답 혹은 수사 질문이다. 마가가 제기하고 대답하고자 하는 하나의 거대 질문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1:27이것이 무엇인가? 권세 있는 새 가르침인가?군중2:7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하나님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서기관들2:16어찌하여 그는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서기관들2:24저희가 어찌하여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가?바리새인들4:41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제자들6:2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지혜를 얻었는가?고향 사람들7:5당신의 제자들은 왜 유전대로 살지 않는가?바리새인들

  마가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이 일단 응답되면 ‘예수님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밝히도록 구성한다. 위에서 인용한 모든 질문들은 예수님에 관한 질문이다. 그가 누구인가를 밝혀내고자 하는 장치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최대 질문에 대한 대답은 8:27-30에 나온다. 1:1-8:26과 8:27-16:8의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사건이 복음서를 두 개의 큰 단락으로 분류하는 전환점이라는데 동의한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 작업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의 실제 사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 설명은 세 장에 걸쳐 세 번 되풀이 된다: 8:31; 9:31; 10:32-34. 이 사명의 선언의 골자는 인자가 고난과 거부를 당하고 죽은 후에 제 3일에 다시 살아난다는 점이다. 개요는 다음과 같다.

질문들누구이며, 왜인가?1:1-8:27응답예수님은 그리스도(베드로의 고백)8:27-30사명이 무엇인가?고난의 사명8:31; 9:31; 10:32사명의 성취수난 내러티브11장-16장

  이 개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가의 주된 관심사가 기독론적임을 의미한다. 마가는 먼저 기독론적 질문에 바르게 대답한 후에야 예수님이 왜 죽어야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구조를 염두에 두고 전체 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A. 서언(1:1-15);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소개한다.
  B. 1부(1:16-3:6); 예수님께서 하나님 왕국에 대한 선언과 함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는 속히 제자들을 부르시고 귀신을 몰아내시며 병든 자를 고치신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왕국(통치)의 도래와 관련이 있다고 선언하신다.
  C. 2부(3:7-8:21); 의미 있는 세 집단의 역할에 대해서 서술한다.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은 군중에게 끊임없는 놀라움의 원천이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개인적인 가르침을 받고 있으며 복음 선포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교훈을 이해하는 속도는 빠르지 않다. 반대자들의 소리가 계속해서 점점 더 거세진다.
  D. 3부(8:22-10:45); 예수님은 자신의 관심을 주로 제자들에게 집중하신다. 예수님은 자기 왕권의 본질을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세 번에 걸쳐 설명하신다.
  E. 4부(10:46-15:47); 이야기가 절정에 도달한다. 왕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 무리들은 흥분하며 그를 환영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배척이 그 날의 주된 반응이다. 예수님은 결국 “유대인의 왕”(15:2)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되기 위해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진다.
  F. 결어(16:1-8);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2. 미시적 구조

  미시적 구조 분석의 예는 2:1-3:6의 논쟁 기사에 엿보이는 전후 대칭구조이다.
        A        2:1-12        중풍병자의 치유
           B        2:13-17        레위를 부르심/ 죄인들과 함께 잡수심
            C        2:18-22        금식 및 새 것과 옛 것에 관한 말씀
         B'        2:23-27        안식일에 이삭을 자름
        A'        3:1-6        안식일에 병자를 고침

  이 단락은 치유 기사가 서두와 말미에서 전체의 틀을 형성하고 있다. 먹는 것과 관련해 두 개의 논쟁 단위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동 근거를 중앙부에 두고 있다.

  1) 샌드위치 기법(Sandwich Technique)

  규칙적으로 발견되는 또 한 종류의 구성 장치는 ‘샌드위치 기법(Sandwich Technique)’이다. 혹은 ‘삽입법(intercalation)’이다. 이것은 두 이야기를 한데 엮을 때 첫 번째 이야기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그 사이에 두 번째 이야기를 삽입한다. 이로써 첫 번째 이야기가 전체의 틀 역할을 하도록 한다. 이런 사례가 최소한 7개가 발견된다.
  (1) 바알세블 논쟁이 예수님과 그의 가족의 대면 사이에 끼어 있다(3:20-21, 22-30, 31-35).
  (2)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 안에 혈루증 앓는 여인의 치유기사가 삽입되어 있다(5:21-24, 25-34, 35-43).
  (3) 열두 제자의 파송과 귀환 사이에 헤롯의 잔치 기사가 나온다(6:7-13, 14-29, 30-44).
  (4) 무화과나무 사건이 예수님의 성전 내 행위를 전후로 두르고 있다(11:12-14, 15-19, 20-25).
  (5) 예수님 살해 음모 기사 안에 예수님이 죽음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14:1-2, 3-9, 20-25).
  (6) 예수님에 대한 공판 사이에 베드로의 부인 사건이 나온다(14:53-65, 66-72; 15:1-15).
  (7) 예수님에 대한 공판과 처형 사이에 조롱의 대관식이 나온다(15:6-15, 16-20, 21-32).

  이런 기법을 사용한 목적은 무엇인가? 각 경우마다 독자로 하여금 두 이야기를 상호간에 비추어 읽고 하나로 다른 하나를 해석해 보도록 권하는데 있다. 무화과나무와 성전사건에서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2) 쌍둥이 기법

  또 하나의 장치는 ‘쌍둥이’라고 불리는 ‘이중 기법’이다. 기적적인 음식 제공 내러티브(5천 명과 4천 명을 먹이신 사건)와 갈릴리 바다 위에서 있었던 제자들의 오해 이야기 등이다. 이 이야기들은 상호 번갈아 등장한다(6:3-44, 오천 명을 먹이심/ 6:45-52, 바다 위 이야기/ 8:1-9, 사천 명을 먹이심/ 8:10, 14-21, 바다 위의 이야기). 이런 이중 기법은 이전 기회에 배우지 못했던 제자들의 우둔함을 집중 조명한다. 이로써 그들의 과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3. 본문 분석

  서언: 예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소개(1:1-15)
  “예수님에 대한 복음(좋은 소식)”은 이사야의 새로운 출애굽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1:3)는 말씀은 세례 요한의 등장을 선언해 준다. 그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때에 하늘에서 들려 온 목소리는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창세기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리고 이사야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의 언어로 예수님의 메시아적 운명을 규정한다.

  1부: 하나님의 왕국이 공개됨- 제자들, 군중, 배척(1:16-3:6)
          1:16-45, 제자들과 무리들
          2:1-3:6, 배척
  2부: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 믿음, 오해, 완악한 심령(3:7-8:21)
          3:7-4:34,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에 대한 소개
          4:35-6:6상, 능력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왕국- 세상의 눈먼 상태
          6:6하-8:21,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되는 하나님의 왕국- 제자들의 눈먼 상태

  3부: 드러나는 신비- 십자가와 제자도(8:22-10:45)
          8:22-9:29, 첫 번째 수난 예고와 반응
          9:30-10:31, 두 번째 수난 예고와 반응
          10:32-45, 세 번째 수난 예고와 반응

  4부: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왕(10:46-15:47)
          10:46-13:27,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왕- 분열된 (주님의) ‘집’
          14:1-15:47,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왕

  결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16:1-8)
  결어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 그러나 그의 출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이야기가 분명히 계속되고 있지만 마지막 사용된 단어는 “두려움”이다. 이것은 독자들이 두려움을 “경외감”으로 바꾸어 읽고 십자가와 부활의 길로 나아가신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기 위한 의도로 본다.

4. 개요

        I. 1:1-15 : 서론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1:1-15 ; 복음의 시작

        II. 1:16-45 : 예수님의 하루
                1:16-20 ; 첫 제자를 부르심
                1:21-34 ; 더러운 귀신들에 대한 예수님의 능력
                1:35-4-5 ; 문둥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구원

        III. 2:1-3:6 : 예수님의 도전들
                2:1-12 ; 반대파들과의 논쟁
                2:13-17 ; 죄인을 부르심
                2:18-22 ; 금식에 대한 논쟁
                2:23-3:6 ; 안식일 논쟁

        IV. 3:7-8:26 :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사역
                3:7-12 ; 하나님의 아들로서 명성을 얻으심
                3:13-19 ; 제자를 부르심
                3:20-30 ; 예수님에 대한 비난
                3:31-35 ; 새가족
                4:1-20 ; 비유
                4:21-25 ; 경고
                4:26-34 ; 하나님 왕국
                4:35-41 ; 예수님의 권세
                5:1-20 ; 예수님의 권세
                5:21-43 ; 예수님의 구원
                6:1-6 ; 고향의 적대
                6:7-13 ; 제자들의 선교
                6:14-29 ; 세례 요한의 죽음
                6:30-44 ; 빵과 물고기
                6:45-52 ; 예수님의 권세
                6:53-56 ; 요약
                7:1-23 ; 정결법 논쟁
                7:24-37 ; 이방인 구원
                8:1-10 ; 두 번째 빵과 물고기
                8:11-13 ; 도전과 응전
                8:14-21 ; 경고
                8:22-26 ; 구원

        V. 8:27-10:52 : 예루살렘으로
                8:27-30 ; 자기계시
                8:31-9:1 ; 십자가의 길
                9:2-13 ; 제자들의 비전
                9:14-29 ; 구원
                9:30-37 ; 제자들의 속내
                9:38-50 ; 제자들의 역할
                10:1-12 ; 이혼
                10:13-16 ;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10:17-31 ; 부자에 대한 경고
                10:32-34 ; 고난
                10:35-45 ; 경쟁
                10:46-52 ; 구원

        VI. 11:1-13:37 : 예루살렘에서
                11:l-11 ; 입성
                11:12-26 ; 성전에서
                11:27-33 ; 권위에 대한 도전
                12:1-12 ; 비유
                12:13-17 ; 세금에 대한 도전
                12:18-27 ; 부활논쟁
                12:28-34 ; 첫째 계명
                12:35-40 ; 다윗 자손 논쟁
                12:41-44 ; 과부의 희생
                13:1-32 ; 성전멸망
                13:33-37 ; 경고

        VII. 14:1-16:8 : 죽으심과 부활
                14:1-11 ; 죽음예고
                14:12-25 ; 배반
                14:26-3l ; 베드로의 부인예고
                14:32-52 ; 예수님의 체포
                14:53-65 ; 심문
                14:66-72 ; 베드로 부인
                15:1-20 ; 빌라도 앞에서
                15:21-41 ; 재판
                15:42-47 ; 묻히심
                16:1-8 ; 빈무덤

  처음 시작 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1:1)로 규정된다. 수세 때와 변화산 사건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한다(1:11; 9:7).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암시한다(12:6).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종말의 때를 알지 못하신다(13:32). 예수님은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대제사장의 물음을 공개적으로 수긍하신다(14:61-62). 그리고 끝으로 백부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인정한다(15:39). 마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메시아 신분을 포함한)이심을 확증한다. 이 확증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한다. 예수님은 막강한 로마에 의해 패배당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막강한 로마가 예수님께서 죽는 바로 그 순간에 그분의 신성을 인정했다.

V. 내용특징

1. 왜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로부터 시작되는가
  초대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및 그의 말씀들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했다. 반면에, 부활 사건 이전의 지상적 예수님의 말씀들에는 별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추측한다. 초대 교회의 초기 설교에는 지상에서의 예수님 사역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짧고 간결하다(행 2:22과 10:36-39).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들이 별로 중요시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오순절 설교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부활 및 그에 대한 성경을 통한 변증에 할애 된다(행 2:23-36). 특히 흥미 있는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이다(행 2:36). 이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인정되신) 것은 지상에서의 그의 사역을 시작하면서나 사역을 하는 동안이 아니다. ‘부활을 통해서’였다. 바울도 로마서 1:4에서 예수께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선언한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요약해서 전하는 대목에서도 예수님의 사역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한다(고전 15:3-5).
  마가의 교회에서도 부활 사건의 선포를 선호하고 예수님 전승을 가볍게 여기거나 심지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영지주의 출현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가는 이에 대한 교정책으로서 예수님의 공생애로부터 시작한다. 복음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확대해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포함시킨다. 부활 사건 이후에 기독교인들이 선포한 복음은 예수님 자신이 수난 이전에 선포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마가는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유효성을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kerygma, 선포)의 견지에서 확보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생애를 강조한다. 예수님은 그의 지상 사역이 시작되던 순간부터(1:11), 그의 지상사역이 십자가에서 끝나던 순간까지(15:39),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이 예수님이 인류에게 “복음”이다.

2. 활동의 복음
  문체의 생동성은 십자가를 정점으로 급히 움직이는 드라마의 인상을 준다. 중풍병자를 내리기 위해 집의 지붕을 뜯는 일(2:4), 광풍이 몰아침(4:37-38), 배추 단처럼 질서 정연하게 군중들을 푸른 잔디 위에 떼 지어 앉히심(6:39) 등을 볼 수 있다.  마가의 주요 관심사는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는 활동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신속한 답변을 원하는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어맞는다.

3. 마가의 솔직함
  마가는 제자들 주위에 후광을 비추려는 의도가 없다. 여러 경우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기술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4:1;. 6:52; 8:17, 21; 9:10, 32).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묘사한다(3:21).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청중들의 놀라움이 표현되었는가 하면(1:27; 10:24, 32),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권능을 행할 수 없었음은 백성들의 불신앙과 직접 결부된다(6:5, 6). 마가는 예수님의 인간적 반응을 묘사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동정, 엄격함, 분노, 슬픔, 온화함, 사랑 등등의 감정들이 모두 차례로 예수님께 귀속된다(1:41, 43; 3:5; 8:12, 33; 10:14, 16, 21). 이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1:1)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서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4. 그 외의 특징들
  1) 베드로 사도가 다른 복음서보다 더 뚜렷하게 부각된다. 굳이 베드로를 별도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도 베드로를 별도로 언급한다. 이 복음서가 베드로와 관련이 있다는 인상을 짙게 남겨 놓았다.
  2) 다른 복음서보다 더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음을 반영하는 자료들이 남아 있다. (1) 아람어의 흔적이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고르반” “달리다굼” “에바다” “엘로이”). (2)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표현들이 다른 복음서보다 많이 나온다(8:11-13; 9:30; 14:65; 8:31ff; 9:12; 10:32-34, 45; 13:32; 15:31). 복음이 후대로 넘어 오고 예수님을 향한 존경심이 커질수록 이런 인성적 표현들은 감소한다. (3) 제자들의 인간적 모습이 다른 복음서보다 더 잘 기록되어 있다. 후대로 갈수록 제자들에 대한 존경심도 더 커지기 마련이다.
  3) 많은 내용들이 유대인보다는 이방인들 특히 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되어 있다.
  4) 고난 받는 인자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내용의 1/3이상을 예수님의 마지막 고난을 기술하는데 사용했다. “서론이 붙은 수난 기사집”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5) 메시아직과 고난의 필연적 관계가 부각된다(9:12). 마가복음의 기독론은 고난 받는 메시아가 그 핵심이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로서만 많은 사람을 위한 구속자가 되신다. 물론 이 고난의 배후에 승리자의 모습이 역력히 나타난다.

VI. 신학적 문서로서의 마가복음

  마가는 심오한 신학적 통찰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초반에 등장하여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것이 세 가지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 왕적 메시아시다. 둘째,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종이다. 셋째,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유지하신다. 오시리라고 고대하던 왕 자신이 스스로 백성들을 위하여 고난당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제자도와 연결된다.

1. 예수님은 누구신가 :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은 메시지보다도 메신저에게 초점을 맞춘다. ‘예수님이 누가신가’가 그의 메시지의 주 관심사다. 마가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예수님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복음서를 부활하신 주님의 나타나심과 함께 끝마치지 않고 빈 무덤에 관한 기사(16:1-8)로 끝을 맺고 있음 또한 이를 대변한다.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하고 따르는 자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마가는 본문 전체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계시를 점진적으로 묘사한다. 초반부터 전례 없는 권위의 소유자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는 인물로 나타난다. 낯선 남자의 제자도에 대한 요청을 전혀 주저하지 않고 수용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모습(1:16-20)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더러운 영에 대한 그의 통제력으로 사람들이 권세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 가버나움 사건(1:22, 27)으로 직결된다. 그 사건이 있은 직후 예수님은 바로 그 마을의 화제가 된다. 그 지역 사방으로 소문은 확대된다(1:28, 32-33, 37, 45; 2:2). 계속해서 무리들과 제자들이 모두 이 비범한 ‘선생’과 ‘선지자’에 대해 궁금증을 버리지 못한다. 연이은 기적이 놀라움을 증폭시킨다. 그로 인해 ‘기독론적’ 의견의 분열이 야기된다. 3장의 대립하는 집단을 통해 이것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통찰력의 진전이 있으리라고 기대되던 제자들조차도 여전히 묻고 있다. “저가 뉘냐”(4:41)? 예수님의 초자연적 권위에 대한 증거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독론적 이해는 진전되지 못한다(6:52; 7:18; 8:14-21).
  베드로가 마침내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확실한 돌파구가 마련된다. 하지만 그 칭호에 대한 베드로의 해석이 ‘하나님의 생각’과 완전히 정반대라는 사실이 드러난다(8:32-33). 다시 수포로 돌아간다. 그 이후, 배척받고 고난당하는 인자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하나님 왕국의 반복되는 이미지는 절망적일 정도로 표류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변화산상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하늘의 영광에 대한 특별한 계시조차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세 핵심 제자가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혼란에 빠진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특별히 적대적이거나 우둔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인간적인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적인 계획에 대한 자연적인 인간의 반응을 대표한다. 마가의 기독론적 전망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예수님의 어록을 다시 사용하자면,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생각”이다(8:33).
  예수님의 메시아적 예루살렘 입성에서 공개적으로 선언된 ‘다윗의 아들’(10:47-48; 11:10)이라는 표현은 당대의 다윗 성의 지도자들과 불가피한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 사람이 뉘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은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예수님 자신의 이해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하나님의 백성의 신학과 신적인 소명과 제도에 그를 끼워 맞추는 문제이다. 예루살렘이 나타내는 권력구조의 신학과 그의 관계의 문제다. 이야기에 나타난 지배적인 두 부류의 ‘인물들’은 실제적인 장엄한 성전 구조와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인간적인 지도력이라는 그 구조를 대표한다. 그들에게 성전은 자신들의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11장부터 이야기는 물리적인 장소인 동시에 내용의 주제인 성전과 산헤드린 회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성전 개혁 사건에서는 예수님이 단순히 성전을 깨끗케 하는 분이 아니다. 성전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성전의 제도를 심판하신다. 이들의 죄를 심판하신다. 성전의 기능을 없애시고 새로운 성전을 제시하신다.
  이로써 예수님은 점점 산헤드린 회원들의 적대적인 질문의 집중적인 표적이 된다. 권위의 문제가 핵심으로 계속 자리하고 있다. 독자는 산헤드린의 수중에 집중된 실제적인 권력과 하나님의 아들의 실제적인 권위의 대조를 점진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예수님은 비록 종교 지도자들의 일시적인 권력에 종속되고 있지만 그들을 해체하기 위해 성부의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12:6-9). 건축자들의 버림을 받지만 하나님이 머릿돌로 사용하실 돌이다. 이 새롭고 하나님이 지으신 건물(14:58)로 인해 기존의 성전과 그 성전이 상징하는 모든 것들은 이제 불필요하다. 13장은 성전의 임박한 파멸과 인자의 즉위를 연결시킨다. 최후의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과 그 언약으로 인해 그의 죽음을 통해 탄생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고 심문을 받고 처형되는 장면에 이른다. 청중들은 “그가 뉘인가(Who is this?)”라는 질문에 대해 갈릴리에서 선지자로 드러났던 것보다 훨씬 확실한 답변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인간적인 생각’을 뒤집어엎는 기독론이다. 또한 복음서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공식적으로 정죄 당하는 순간에 그를 정죄한 사람들에게 초월적 권위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14:61-62). 이것은 내러티브의 역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기독론이다. 그분은 곧 “하나님의 아들”(1:11; 3:11; 8:38; 9:7; 12:6; 13:32; 14:36, 61; 15:39)이시다. 예수님은 왕이시다.

  하지만 그 왕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정복자로 오시지 않았다. 오히려 종으로 오셨다. 매를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고문과 조롱을 당한 후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십자가 위에서 죄인이 되신 것은 고난과 섬김의 삶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행동이다(10:45). 이 예수님은 “인자”로 불린다. “인자”는 어떤 다른 인간에게도 적용되어질 수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예수님께 적용된다. 그 명칭은 예수님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 명칭은 예수님의 독특한 사역의 세 가지 원칙적인 국면을 반영한다. 지상에서의 사역(2:10, 28) 즉 고난과 죽음, 부활(8:31), 재림(13:26)이다. 특히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자로서 예수님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13:26; 14:21, 62).

2. 메시아의 은밀성

  “은밀(비밀, μυστήριον)”이라는 단어는 “비밀(secret)”로 가장 잘 번역된다. 그 내용이 공개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기적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시키시는 네 번의 시도(1:43-44; 5:43; 7:36; 8:26)에서 가장 잘 두드러진다. 그 시도는 때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1:45; 7:36-37). 마가복음 내에서 예수님의 신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귀신들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을 잠잠케 하신다.
  잠잠케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자기 영광을 구하기보다 오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다. 이런 예수님의 시도는 몇몇 저명한 구약 선지자들과 비교할 수 있다. 몇몇 선지자들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사명만을 완수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일했다(왕상 11:29; 13:8-9; 21:18, 왕하 9:1-10).
  둘째, 마가의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거짓 기독론을 ‘바로잡기’ 위한 마가의 의도이다. 어떤 부류들은 예수님을 ‘δειος ἀνερ’, 즉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신적 인간(Jesus as the Divine Man)’으로 보았다. 신적 인간으로서 예수님은 기적적인 능력과 초인간적인 지혜를 향유했다. 하나님의 아들로 칭송받았다. 이러한 ‘신적 인간 기독론(Divine man Christology)’의 주창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굴욕적인 죽음을 간과하거나 소홀히 한다. 반면 예수님의 기적적인 면과 능력만을 강조한다. 지금 여기에 구원을 베푸시는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신적 인간이신 예수님에게 발견되는 구원의 현재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것을 ‘영광의 신학(theology of glory)’이라고 말한다. ‘영광의 신학’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소홀히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차원은 영광이 아니다. 십자가상의 대속의 죽음이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에 예수님의 승천(8:38; 13:26; 14:62)뿐만 아니라 고난과 죽음(8:31; 9:31; 10:33-34)을 강조한다. 마가는, 신적 인간 기독론을 고난 받는 인자에 집중되어 있는 ‘십자가의 신학’으로 되받아 치고 있다. 단순히 그의 적대자들의 기독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참된 의미는 예수님을 고난 받는 인자로 이해함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로써 그들의 기독론을 교정하고 있다. 이것을 ‘교정 기독론(Corrective Christology)’이라고 부른다. 마가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것을 권면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8:34).

3.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 제자도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제자들이 가장 두드러진 등장인물들이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 시작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에게 그를 따르도록 부르신다(1:16-20). 이때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기까지(14:50) 예수님의 계속적인 동반자들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마가복음은 제자도에 대해서 말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그들의 생업을 아낌없이 버리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모습은 저들의 무딤과 둔함을 강조하고 있는 다른 본문들과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비록 제자들이 특권을 누렸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 참된 제자 됨이 요구하는 바를 알지 못했다.
  여기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마가의 기본적인 의도는 그의 독자들에게 진정한 제자 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동안에 실패자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아니다. 교회에 대한 본보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십자가와 부활을 떠나서는 제자 됨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아직 목격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그의 죽음과 부활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자도의 핵심은 십자가이다.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영접함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세상을 향하여 십자가가 전파되어야 한다. 비록 십자가는 멀리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가까이 계신다. 우리의 세상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다면 참된 희망이 없다.

  이 점에서 기독론과 제자도는 궁극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제자도는 건강한 기독론의 올바른 결과이다. 제자의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생명을 구원하는 길과 잃는 길이다. 마가는 이 두 길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8:22-20:52). 그 중 핵심이 이 두 말씀이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8: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9:35).

마가는 사람들의 원함과 예수님께서 원하심을 대조한다.

What People Want for ThemselvesWhat Jesus wants for Peopleself-centeredother-centeredsave one’s own lifelose one’s life for the good newsacquire the worldgive up possessionsbe greatbe leastlord over othersbe servant to allbe anxioushave faithfearcourageharming otherssaving othersloyalty to selfloyalty to God for the world

4. 믿음(faith)
  제자도와 믿음은 별개가 아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사명에 반복적으로 참여하고 그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들음에 의존되어 있다. 믿음에 대한 두 가지 대조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첫째, 주님께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이 반응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닌 외부인에게서 나타난다. 한 문둥병자(1:40-42),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풍병자의 친구들(2:5), 혈루증 앓는 여인(5:34), 수로보니게 여인(7:24-30).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9:24), 시작장애인(10:52), 가난한 과부(12:41-44), 향유를 부은 여인(14:3-9), 백부장(15:39). 둘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거부한다. 예수님의 가족들(3:31-35), 고향 사람들(6:1-6), 종교 지도자들(11:27-33)들은 믿음을 거부한다. 심지어 열두 제자들은 믿음을 갖는데 주저하고 완전하지 못하다. 이들에게 믿음은 서서히 다가오고 심지어 몹시 힘든 일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음으로써 영접한다.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4:10-20).
  마가는 곳곳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거듭거듭 강조한다. 예수님께서 신앙을 격려하는 대목에서(5:36; 11:22) 뿐만 아니라 불신앙을 책망하는 대목에서도 증명된다(4:40; 6:6; 9:19). 예수님은 신앙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그 신앙을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열쇠라고 해석한다. 치유를 베풀 때나(5:34; 10:52) 예수님 자신의 고유권한인 사죄함이라는 신적인 특권을 베풀 때(2:5)나 이 같은 강조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특히 11:12-14, 20-25에 있는 무화과나무 사건은 이 결론을 잘 보여준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베드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무화과나무를 뿌리 채 마르게 하신 그 말씀 권세를 부러워한 것일까? 열매 없는 나무의 심판을 보면서 열매 없는 성전의 미래를 생각했을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열매 없는 성전을 상징한다. 동시에 열매 없는 인생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놀람은 예수님의 말씀 권세보다는 성전의 심판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이런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열매 없는 성전의 심판이 현실로, 그것도 당장에 일어났네요. 어떻게 이 심판을 피할 수 있나요?” 예수님은 대답한다. “하나님을 믿으라”(22). “자기 능력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심판을 피할 수 있다.” 마가는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형태로 찾아올 임박한 심판을 뜻하는 무화과나무의 운명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했다. 비록 슬픈 일이라 할지라도 곧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확신을 통해 설명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라는 어록이 첨가되었다. 이 단락에서 신앙에 반대되는 것은 의심이다(23). 의심의 반대는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앙의 “절대적 단순성”이다.

5. 하나님의 왕국(basileiva, the kingdom of God)

  1) 왕국에 대한 첫 번째 선언
  마가는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1:15)라는 관점에서 예수님이 전해 준 “좋은 소식(복음)”을 요약한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 핵심은 “하나님의 왕국”이다. 1:15에서뿐만 아니라 15:43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의 왕국은 이사야 52:7과 연결된다.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다스림(통치)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평화와 구원과 위로와 구속을 가져다준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과 연결된다.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이 임했다.

  2) 왕국은 제자들로부터
  예수님께서 왕국이 임하였음을 선언하신 후 곧바로 제자들을 부르신다(1:16-20). 하나님의 왕국은 제자들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하나님의 왕국 백성이 된다. 동시에 그 왕국 선포 역사에 동참한다. 하나님의 왕국 비밀이 주어진다. 그것을 비유로 말씀하신다(4:1-34). 씨 뿌림과 자람과 성장은 하나님의 왕국과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마가가 처음 사용한 세 비유 중 두 개가 하나님의 왕국의 본질을 예시한다. 나머지 다른 하나의 주된 비유 역시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대한 예수님의 함축적인 말씀으로 시작된다(4:11).

  3) 왕국의 미래와 변형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예고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9:1).

  4) 왕국 입성
  9:30-10:31은 왕국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왕국에 참여하는 길은 오늘의 삶의 모습에 달려 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을 영접하고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특별히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영접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왕국 백성이 된다.
  예수님의 공개적인 선언(1:15)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왕국은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왕국은 자연 상태의 인간의 인식을 넘어선다. 씨가 부지중에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그다지 눈에 띄지 않던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랄 때처럼, 하나님의 왕국도 갑자기 사람들 가운데 그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현재로는 비밀리에 형성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권능 가운데 임하는 것을 목격할 날이 올 것이다(9:1).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 이미 역동적으로 현존하고 있다(1:14). 하지만 온전한 경험은 여전히 미래에 놓여 있다(14:25). 그 중간 시기에도 하나님의 왕국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충성을 요구한다(9:47). 제자들과 적대자들은 세상적인 기대들을 도전하고 뒤집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10:13-27).

6. 종말론
  마가복음은 종말론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시종일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말한다. 처음부터 복음은 선지자적 증언의 장엄한 서언(1:2-3)으로 표현된다. 또 복음은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예수님의 선언과 증거와 관련된다. 뿐만 아니라 ‘메시아적’ 예루살렘 입성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주제이다. 이 주제는 인자가 “기록된 대로 갈 때”(14:21) 따라 올 재난에서도 반복된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죽으신다. 이를 통해서 새 언약이 체결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새롭게 탄생한다(14:22-25). 이로써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결국 머릿돌로 영광을 받게 된다(12:10-11). 이것은 종말론적 언어이지만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언어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왕권으로 회복된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언어이다.

VII. 오늘날의 세계 안에서의 마가복음 : 이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우리는 세속문화에 노출되어 있다. 세속문화는 로마 시대의 핍박만큼 거세지는 않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오히려 더 크다. 로마의 마가 공동체처럼 혼란과 의심에 빠지기 쉽다. 마가의 공동체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지만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셨다. 이 주님은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시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8:34). 이것이 공부의 목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종으로 사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한걸음만 나아가면 ‘종으로서의’ 교회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 한걸음을 걷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 교회는 십자가 밑에서 사는 교회이다. 권세를 가장하지 않는 교회이다. 고난으로부터 면제받음을 보장해 주지 않는 교회다. 희생이 따르는 교회이다. 물론 교회는 승리에 대한 기대도 있다. 그 승리 또한 주님께서 주셨다. 이 승리 때문에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승리의 약속을 주신 주님께서 복음 전파의 사명도 주셨다. 주님은 우리가 이 사명을 ‘종으로서’ 감당하기를 원하신다. ‘영광의 신학’이 아닌 ‘십자가의 신학’으로 섬기기를 원하신다. 마가복음은 단순한 구호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 아니다. 아는 것이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 기독교의 위기는 신앙의 질의 위기다. 삶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다. 그 삶을 마가복음에서 찾고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 마가의 날(St. Mark's day)’을 위한 기도서에는 복음 전도자이자 신학자인 마가에게 헌정한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당신의 전도자인 성 마가의 거룩한 교리로 당신의 거룩한 교회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헛된 교리의 광풍에 정처 없이 밀려다니는 자녀들처럼 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한 복음의 진리 안에 굳게 서게 하소서!”








(2007. 02. 14, 안 스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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